조용기 (1936—2021) 趙鏞基 | David Yonggi Cho 

출신국 | Country of Origin
  • 한국 | Korea

사역 국가/지역 | Countries/Regions of Ministry
  • 글로벌 | Global
  • 아시아 (한국, 일본, 중국) | Asia: Korea, Japan, China
  • 서구 (미국, 영국) | West: United States, UK
교파/전통 | Traditions
  • 오순절 | Pentecostal
사역 및 리더십 분야 | Ministries/Leadership
  • 목회자 | pastor
  • 전도자 | evangelist
  • 교회 개척자 | church planter

조용기 목사는 한국의 오순절 계통의 목회자이자 전도자, 그리고 세계적인 교회 지도자였다. 세계 오순절 운동과 교회 성장 운동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전무후무했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립자이자 담임목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1936년 대한민국 경상남도에서 아버지 조두천과 어머니 김복선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련 속에서 성장하던 중 17세에 치명적인 폐결핵에 걸렸다. 임종의 위기 속에서 복음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미국 오순절 선교사들의 권유로 순복음신학교(현 한세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58년 졸업 후 동문이자 향후 장모이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긴밀한 사역 파트너가 된 최자실과 함께 서울 외곽에서 첫 교회를 개척하였다. 전후 도시 빈민층을 대상으로 개척된 이 천막교회는 신유와 귀신 축출 사역으로 명성을 얻으며 수많은 군중을 끌어모았다.

1960년대 초 미국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전국적인 대형 전도 집회를 개최할 당시, 조용기는 자주 통역 사역을 했다. 그는 1961년 교회를 서대문 도심으로 이전하며 양적 성장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1962년 한국 하나님의 성회 목사로 안수받았으며, 그의 교회 교인 수는 1964년 3,000명, 1968년에는 8,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과 양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1964년 구역(cell group) 제도를 도입하여 평신도 지도자, 특히 여성들을 훈련하여 동원함으로 목회 사역을 분담하게 했다. 1965년 김성혜(Grace)와 결혼해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이듬해 한국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68년 국민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두 개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같은 시기 그의 국제 사역도 시작되었다. 1964년 미국 하나님의 성회 창립 50주년 기념대회 설교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으며, 1966년에는 동남아시아와 미국 전역에서 사역을 펼쳤다. 1967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오순절대회(Pentecostal World Conference)를 비롯해 유럽, 북미,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1972년에는 일본 구령을 위한 “1천만 구령 운동”을 전개했고, 1976년에는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을 설립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그는 세계 오순절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역할은 한국 대형교회의 목회자를 넘어 국제적 전도자, 교회 성장 전문가, 선교 지도자, 그리고 세계적 교회연합의 종교 지도자로 확장되었다.

1983년 교회는 향후 서울의 금융 중심지가 될 여의도로 이전했다. 여의도 시기(1983–2008) 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등록 교인 수 86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로 성장했다. 그는 국제교회성장연구원과 왕성한 국제 전도대회 등을 통해 자신의 교회 성장 전략을 전파했다. 또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전 세계 80개국에서 총 370회에 달하는 대형 전도 대성회를 인도했다. 전략적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976년 순복음세계선교회를 조직하였으며, 초기에는 서구에 선교사들을 파송했으나 점차 일본 및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교회의 2024년 선교 백서에 따르면, 67개국에 676명의 타문화권 선교사가 파송되어 있다.

여의도 시기 동안 그는 오순절 진영 및 교계 전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입지를 다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3년, 1998년, 2023년 세계오순절대회 등 대규모 국제 행사를 개최했다. 또한 그는 세계 교단 조직인 세계하나님의성회연맹(World Assemblies of God Fellowship)의 1989년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의장(1992–2000)으로 재임 중이던 1994년에는 세계하나님의성회 대회를 개최해 한국 하나님의 성회 교세 100만 명 달성 운동을 추진했다.

국내적으로도 한국 사회의 복음화 노력에 크게 기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해당 교단은 1980년대에 대대적인 교회 개척 운동을 전개하여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빌리 그래함 대성회(1973), 엑스폴로 74(1974), 세계복음화대성회(1980),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대회(1984) 등 대규모 초교파 전도 집회가 열렸다. 이 대형 집회들은 모두 여의도에서 개최되었으며, 조용기 목사와 그의 교회는 강사 참여 등을 통해 대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앞서 언급한 1994년 세계하나님의성회 대회 직후에는 세계 복음화와 생태계보전을 위한 “10․3 세계기도성회”가 열려, 여의도 광장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0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석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 성회에는 125개국 2,000여 명의 세계 하나님의 성회 지도자들과 한국의 주요 정치 및 사회 인사들이 참석했다.

교단 간 연합 측면에서 그는 1989년 복음주의 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설립을 지원했다. 1997년 한국 하나님의 성회가 에큐메니컬 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하도록 주도했다. 이후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유치 및 개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사역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1988년 기독교적 시각을 공론장에 전달하기 위해 <국민일보>를 창간했다. 그의 인쇄 매체 활용은 1968년 월간지 <신앙계>, 1978년 주간지(현 <순복음가족신문>) 창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방송국을 통해 설교를 송출하기 시작했으며, 곧 전 세계로 영역을 넓혔다. 새로운 통신 기술의 활용에도 앞장서, 1990년대 초에는 교회 대성전과 수도권에 산재해 있는 지성전, 심지어 해외까지 예배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동시중계 시스템을 구축했다.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1988년에는 청소년 직업 훈련과 노인 복지를 위한 엘림복지타운을 개원했으며, 1993년에는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1999년에는 국제구호개발 NGO인 “선한사람들”(The Good People)을 설립하여 사회봉사 사역을 체계적이고 글로벌한 규모로 발전시켰다. 2007년에 시작된 평양 조용기 심장병원 건립 사업은 대북 사회봉사의 대표적 사례다. 2010년 남북 관계 악화로 공사가 중단되었으나, 교회 측은 계속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남북 관계 개선 및 평화 정착에 기여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교육 분야 투자 역시 활발히 이루어져 순복음신학교를 종합대학인 한세대학교로 발전시켰으며, 미국 애너하임의 베데스다 대학교를 비롯한 해외 교육 기관들도 설립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과 서훈을 받았다. 한국 정부로부터는 사회복지 기여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1996) 수여받았으며 국제적으로는 뉴욕시 교협으로부터 “Family of Man” 메달(2005)을, 카보디아 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Royal Knight of Friendship”(2009)을 받았다. 뉴욕시는 그의 사회적 기여를 기려 5월 18일을 “조용기의 날”(2005)로 선포하였으며, 미국 의회는 한미 관계 및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한인 서한(2007)을 전달했다.

조용기는 신유와 기적의 체험을 강조하는 역동적인 설교로 유명했다. 그의 신학은 전통적 오순절 신앙에 기반을 두고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된 것이었다. 이는 “오중복음,” “삼중축복,” 그리고 “4차원의 영성”으로 대표된다. 오중복음은 전통적 오순절 신학의 신조(구원, 성령세례, 신유, 재림)에 “축복”을 더해 한국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다. 삼중축복은 요한삼서 1장 2절에 근거하여 전후 황폐해진 한국 사회에 전인적 축복을 제시한 신학적 발전 형태였으며, 4차원의 영성은 축복된 삶을 위한 실천적 지침이었다. 이러한 신학을 체계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오산리 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1973)과 국제신학연구원(1978)을 설립했다.

그의 사역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며 여러 논란도 뒤따랐다. 그의 오순절 신앙과 뜨거운 예배 방식은 장로교 등 다른 교단으로부터 신학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신유 기도는 한때 "무속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으며, 기복신학(prosperity gospel)으로 귀결된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었다. 가장 큰 신학적 논쟁은 198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 진정서가 접수되면서 시작된 신학조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83년 조사 보고서는 9가지 신학적 문제를 지적하며 그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대다수 항목은 오순절 신학 및 실천에 관한 것이었으나, 제사 문제 및 부활 주장에 관한 발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오순절 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조용기 목사의 해명이 이루어짐에 따라, 장로교단은 1994년 이단 지정을 철회했다. 그러나 임기 말년에는 교회에 재정적 손실을 입힌 배임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담임목사직에서 퇴임한 후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으며, 202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퇴임 당시 그는 약 20개의 지성전을 독립된 지역교회로 분립시켰다. 2006년부터 시작된 민주적 후임자 선출 과정을 주도하여 이영훈 목사가 후임자로 선출되었다. 한국 대형교회들의 세습 논란 속에서 그의 후임자 선정 과정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로 50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하고 편집했으며, 그의 책들은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마원석, 오랄로버츠 대학교


각주 | NOTES
[1] 서동준, “Testing the Spirits? The Theological Controversy Surrounding David Yonggi Cho and the World’s Largest Church, 1983-1994,”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31, no. 2 (2025): 151–70).

 

추가 참고문헌| For Further Reading:

  • Cho, David Yonggi Cho. Dr. David Yonggi Cho: Ministering Hope for 50 Years (Alachua, FL: Bridge Logos, 2008)
  • Hurston, Karen. Growing the World’s Largest Church (Springfield, MO: Gospel Publishing House, 1994).
  • Lee, Younghoon. “David Yonggi Cho: A Stateman for Global Pentecostalism,” Pentecostal Education, vol. 7, no. 2 (Fall 2022), 139-151.
©8/17/2026